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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걸 했을때 행복함을 느끼나요?"
삶을 살아오면서 제가 기분이 안정 될때가 언제 였는지 생각해 보면
창작을 할때 였습니다. 내 손을 만들어서 새로운 영감이 탄생했을때
가 있습니다. 보통 그림이 하나를 그린다고 하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기다림 마저도 좋았습니다. 한동안 두기도 하고 안그려지는 날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붓을 잡는다면 창작에 느낌을 받을때가 가장 좋았습니다.
창작 느낌이 든다는 건 내 안에 어떤 해방감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저를 끌어 당기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친구도 저를 보면서 그림을 시작하면 집중에 강한 아이라고 이야기 할 정도 였으니까요.
그리고 장시간 집중을 하다가 눈이 풀린채로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림을 왜 그리나요.'라고 질문 했을때 저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술을 할 때 왜 그리는 지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몇 년씩 하는 사람들은 예술을 창작하는 일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매력을 느낀다고 합니다.
저는 현재는 그림을 배우러 다니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몇년 지나고 그때 배운 기억으로 감각으로 남겨져 있을 뿐입니다.
그림 활동을 했을 때는 그 밖에 일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 감각을 그대로 유지 하는게 좋았을까
아직도 한가지는 확실하게 무엇을 하고 있다 라는게 정해지진 않았습니다.
혼자서 하면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은 적습니다. 하지만 내가 느낌이 괜찮다면 그
감각을 믿어보는거도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p.s. 그리고 그림에 집중을 하기 최적의 상태는 노가다라도 서서하거나 힘들게 일을 하고
쉬는 날 그림을 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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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교생때 이야기 |
학과에서 교생 점수를 따야 하는 기간도 있었습니다. 보통 교생은 4학년 때부터
시작하기도 하는데 저희는 1년을 앞당겨 하기로 정해졌습니다. 교생을 정해지는 거도
뺑뺑이로 가기로 했습니다.
타 지역을 넘어가야 하는 친구는 자신의 모교가 있어 그곳으로 지원해서 갔습니다.
선착순으로 중복되면 가위 바위 보를 해서 가야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제 지역 땅끝으로 가는
남 고등학교에 가게 될 뻔했는데 다행이 한 선배가 가기로 정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의 모교는 가지 못했지만 그 근처 여자 중학교로 정해졌습니다.
그곳에 가보니 타 학과 사람들도 몇 명 정해져 전체 6명이 되었습니다. 교무실 뒤편에 있는 휴게실
같은 곳에 자리 잡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학생들이 저희를 신기한 듯이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또 남자 선생님들을 아이돌 보듯이 보고 있었습니다. 저희 각자 마다 지도 선생님이 정해 졌고
지도 선생님이 교실로 따라오라고 해서 저도 같이 갔습니다. 그곳에 제가 주로 맡을 반이 있고
그곳에서 저를 소개하는 거 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 친구들이었는데 학생들이 제가
통통해 보였는지 개그맨 송필근을 닮았다고 귓속말로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교단에 서자 마자
무슨 얘기를 할지 몰랐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 소개를 한 뒤 한 교시 마치자 마자
휴게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야 한다니... 그래도 이왕 하게 된 거 잘 보내보자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지도 선생님은 '나는 남자 선생님이기에 애들을 다그치고
뭐라 얘기를 하지만 여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수업 시연을 하러 중학교 1학년 반에 갔는데 이제 초등학교에서 1살 더 먹은 친구들이었기
작고 귀여운 얼굴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지도 선생님은 ‘이 선생님이 여러분과 같이 수업하려면
조용히 해야합니다’ 하고 먼저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학교에서 미리 연습해 간 기본 수업 시안을 짜는 일을 맡기도 하고 다른 반 수업도 할 때 자료를 가지고 직접 발표도 하며 가르치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런 일도 있었지만 주로 맡게 된 반에서는 학생들 공부하는 데 감독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소심함은 아직 남아 있어 창문 밖을 쳐다보는 일도 많았는데 학생들이 그걸 보고
저를 지켜주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곳에서 몇몇 친구들과도 대화를 했는데 저를 특히 잘 이해해 주는 친구들도 있어
고맙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다 가기 전에 공개 수업으로 시연 발표도 해야 했습니다.
바로 교과 과목 한 사람과 비교과 한 사람 정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선생님이 하려고 정해졌는데
저에게 눈짓으로 해주면 안되겠냐고 하길래, 그래서 저는 해봐야겠다 하는 마음이 있어
내가 맡겠다고 했습니다. 시연 수업은 제가 맡은 반이었습니다. 발표하기 전에 중얼대며 연습하기도 하고
동생이 팁도 알려주기도 하고 그렇게 준비를 했던 거 같습니다.
그때는 학교 선생님들 전부 시연 수업에 참석했고 저도 이내 침착하면서 하려고 했던 거 같습니다.
잔행을 하다가 마인드 맵을 만드는 일을 진행했습니다. 한 친구가 날개 모양으로 그린 게 인상이 깊어
시간이 나면 발표를 시켜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 맞춰서 해내느라 발표를 못 시켰는데
다시 확인해 보니 시간을 좀 더 일찍 마쳐버린 거였습니다. 그리고 뒤의 정리는 지도 선생님이 맡아서
했습니다. 중간에 교장 선생님도 듣다가 나가셨는데 어떻게 생각하셨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수업 평가를 할 때 내가 ppt 안에 글씨가 작았다는 이유와 시간을 맞추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고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중간에 선생님이 하고 싶은 말이 없나요. 하고 이야기 해서
저는 '학생들과 좋은 시간을 만들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고 이야기 했습니다.
(저희 엄마는 그거 새 나라의 어린이가 하는 이야기하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잠시 소침해 있었을 때 우리 반 친구가 '선생님 오늘 수업 너무 멋있었어요.' 하고
이야기 하는 거였다. 나는 준비도 못한 거 같은데 학생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는 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교생 기간은 5월 한 달이다 보니 스승의 날도 같이 포함되어 있어 각 반마다 학생들도
교생선생님들에게도 선물을 준비하고 했습니다. 저한테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했는지
친구들이 케이크 두 개를 사서 다른 선생님한테 자랑을 해도 된다고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칠판에 친구들이 써 놓은 글씨들을 보고 저도 감동을 받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꼭 선생님이 되세요.' 저도 앞에 나와서 학생들과도 이야기 하기도 하고 조금은
친해진 감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나를 중간에서도 챙겨준 친구도 있었는데
내가 마음에 든다고 선생님 따라갈 거에요. 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저는 순간 시연 발표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이내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학과 교생 선생님들과도 나중에 뒤풀이 하기도 했지요. (태어나서 처음 해 본 일이었어요.)
그 후로 제가 다른 일을 할 때도 밖에서 내가 만난 학교 친구들과 마주치기도 하고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를 기억해 주는 친구가 있어 다행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번 블로그도 알려주었는데 나에게 친구 추가를 하면서 쪽지로 안부 인사를 묻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교생도 하길 잘했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 후로 선생님이라는
꿈도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현재 진행형에 있다는 데에 머물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남고는 안 가길 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학과 친구 중에 남자 고등학교를 간 사람도
있긴 한데 자신이 키가 작아서 손을 위로 뻗으며 장난을 치는 학생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학생 때 교생 선생님도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저도 학생들이 선물이 아쉽지 않도록 학생들을 캐릭터로 그려서 종이로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이때 코팅을 했으면 더 좋았을 거 같다고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의 첫 사회생활 교생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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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영국에 한 아카데미에서 석고상을 운동 기구로 만들어
체력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걸 캐치하여 그림 작업을 하는 사람이 있는 영상이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도 전시의 형태로 소개를 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미술실에 가면 석고상을 한 곳에 두고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원래의 소묘 방식이 보통 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보던 석고 소묘 형식에서 움직임이 생기면 어떨까 사실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시시각각으로 형태를 잡아야 하고 그림자 부분까지 변화된 형태에서는 그림을
잡아내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선생님도 제가 소묘를 배웠을 때
한쪽만 그리기도 했지만 보는 각도 방향을 달리해서 그려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석고상을 여러 방면으로 살펴보았을 때 당연히 시점이 다르게 보이고 위치도 달라집니다.
'석고상 소묘는 너가 다음에 어떤 걸 그리더라도 적용이 될거다.' (그때는 저도 정확히는 몰랐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린 그림이 정확하지 않아 선생님도 부분 지적 해주시면서 다시 수정하기도 하고
그 부분에서 관찰을 하는 방법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같은 부분은 지루하기도 했지만 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기도 했지요. 그때 한 2절지에 3시간으로 입시 시험처럼 했으면
저는 진짜 미술을 해볼 기회는 없었을 거라 믿습니다.
소묘가 기본이 되었던 건 소묘를 선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면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채화 유화 다른 미술을 해도 형태 감각을 익히는데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평소에도 관찰을 해내는 일이 중요하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인지 저는 그림을 볼 때 꼼꼼히 확인을 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미술 전문가 영역까지는 더 익혀야 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어요.
가끔 어떤 걸 보면 무언가 만들어보고 싶고 생각이 떠오른다는 게 있는데 그거도 적용이 되는
일도 있더군요. 그림 뿐만 아니라 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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