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하기 직전 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화실을 처음 가보았습니다. 그 문을 여는 순간 물감냄새와 함께 풍겨져 나오는 색감있는 풍경이 눈에 선선하게 들어왔습니다. 내가 교실에서 봤던 책상, 의자, 칠판이 아닌 화판과 이젤이 있는 공간, 그건 마치 내가 공부를 마치면 돌아오고 싶었던 미술실 풍경이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저의 도구는 책과 사프펜슬이 아니라 붓과 판넬 캔버스를 이용한다는데에 낯설면서도 설렘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의 그림을 보았을때 실제로 사실 처럼 보이지만 사진은 아닌 그림 같은 그림,
그게 저의 마음을 사로 잡기도 했습니다. 그림을 하게 된다면 난 정말 늘 행복할거 같아,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함, 저는 그걸 믿어보기로 결심 했습니다. 그림도 노동이기에 공부와 같아서 꾸준함과 인내심을 요구했지만 그림을 배울수 있다면 그 과정마저 안고 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한 3년 한곳에서 하다가 또 한번 장소를 바꿔서 옮기고 이사를 해서 또 한번 이렇게 화실을 옮겨 다니곤 했습니다. 제가 두번째로 간 화실은 2층으로 올라가야 했는데 노후된 부분도 있었지만 그곳에서도 그림을 배우는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저는 나름 만족 했습니다. 그때는 수채화와 소묘 두가지를 같이 했었습니다.
사실 날씨가 더울때는 그 안이 정말 더운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선풍기 하나로 견뎌 냈습니다. 매일 저녁이 되면 계단 내려가는 곳이 캄캄하기도 했었는데 선생님은 일정이 있으면 제가 그림을 마무리 할때까지 하고 갈 수 있도록 예비 열쇠도 만들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열쇠를 가지고 평일에도 가고 주말에도 사람이 없어도 간 적은 있습니다. 같이 공부하는 이모님은 저녁엔 어두우니 너무 늦게까지는 하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시기때 멘땅의 헤딩과 같이 그림으로 외길만 걸어온 생활을 해왔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열쇠는 화실을 한번 옮기고 난 뒤 그림을 쉬고 있을때 정리 했던거 같습니다. 지금도 이 열쇠를 보면 그림을 그리며 생활했던 모습을 떠올리고 합니다. 제 친구도 매일 입시때 뒷받침이 없고 발만 있는 둥근 의자에 오래 앉아서 허리가 아팠다고 하네요. 하지만 사람들과 모이면서 서로 담소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곤 했습니다. 다시는 이 열쇠로 화실 문을 열지 못합니다. 화실은 첫 인상은 지금은 인상과는 다르지만 제가 소중하게 여겼던 시간들이 있습니다. 항상 이 열쇠 속에 간직해 있기를
한 대학 시절에 이사를 한번해서 졸업하고 3년을 화실에서 그림 공부를 하였습니다.
여름에는 환기는 잘 안되는 곳이이서 꿉꿉하고 겨울에는 난로를 틀어도 벽쪽에는 추운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배우기는 적당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림 하나에는 집중하기 좋은 그런 공간이었거든요. 버스타고 15분 정도 걸리고 도착하면
그림 부터 먼저 그리는 일을 했었습니다. 그 시간도 행복했던 때도 있었지만 약간의 고난도 있었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남아 그림을 그리고 저녁 9~10시 되기 전까지 그림을 한 적도 있습니다. 약간의 휴식도 취하고 배고플땐 밥을 사와서 먹거나 도시락을 가져가 먹기도 했습니다. 제게는 그거 하나만 목표가 있었기에 그 일이 고되고 몸이 욱신거려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이 훈련이 되어 하나에 집중방법을 익힌거 같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얼른 잡고 저는 좀더 밝고 창문이 있는 곳에 작업실을 따로 만드는게 지금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이루어 지기를 기다려 봅니다.
집 그림 작업실
나의 방 옆에 베란다 쪽으로 께작 께작 작업을 하고 있던 중 주변이 너무 좁고 불편 하다느 걸 깨닫고 엄마와 함께 짐을 정리하면서 만들어진 작업실이다. 그전 부터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짐을 정리하고 나니 훨씬 수월하게 작업하기 좋은 공간이 되었다.
그때 전구도 새로 달고 밝기도 괜찮았다. 엄청 더운 여름과 겨울이 아니면 사용기 가능한 장소이다. 그림 작업도 되고 집에서 만들었기에 다른데 어디가서 구하는거보다는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음악을 틀어도 괜찮다. 왠지 내맘 같지 않은 오늘인데도 엄마와 같이 합작한 작업실이 좋기도 했다. 주말이면 언제나 전구를 밝히고 이용을 하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