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선생님 손 |
그림과 이야기
미술을 다닐때 만해도 저는 선생님이 어떻게 그리는지 관찰하고 주의 깊게 보기도 했습니다. 보고 따라한다는 건 그대로 보고 한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리는 감각을 익혀 나도 적용할수 있도록 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유연한 손놀림으로 물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지만 저는 아직 손이 익숙치 않았습니다. 저와 같이 배운 10살 위 언니도 선생님이 하는 색 표현을 따라할 실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그릴까 고민하던중 선생님이 제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소현아 내가 너어게 손을 줄게, 넌 내가 후에 도 수채화를 잘 그릴 수 있게 만들어 줄거다‘ , 실제로 그 말이 진짜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저는 그 말을 듣고 안심해 했습니다. 늘 실수를 할까 두려움을 가지고 내가 하는게 이게 맞을까 의문이 들면서도 그럼에도 선생님도 가끔은 ‘이렇게 하는게 아니지~’ 하면서 쓴소리도 같이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할수 있다는 희망도 함께 주어 저는 그림 그리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화실을 찾아왔을때 말 없이 화실을 들어왔을때는 선생님은 저인줄 알았는지 ’소현아 왔나‘ 하면서 인사를 건네주기도 했습니다. 저도 잠시라도 담소를 나누고 앞으로 할 계획도 의논하고 화실을 나왔습니다. 20대 중반때까지 함께한 선생님의 가르침은 지금도 늘 한결 같습니다.
어느날 저는 그림을 그리는데 지금은 옆에 선생님도 있지 않습니다. 같이 대화하던 이모님이나 언니도 한번은 연락했지만 각자 일을 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초등학생 6학년 1년,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에서 중반까지 10년, 그림을 놓지 않기 위해 쏟아 부은 시간은 아깝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내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 선생님이 ’내 손을 줄게‘ 하는 말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p.s. 선생님 다음에라도 선생님에게서 배울 수 만 있다면 제대로 배우겠습니다.
 |
| 도계동 삐삐당 카페 |
스케치랑 채색까지 하면 한 2주는 걸린듯 합니다. 며칠씩 나눠서 하다보면
어느새 완성은 되어 있답니다. 제가 그림을 그리는 마인드 이기도 하구요.
시간이 되면 한번 그려보고 싶었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그리게 되었네요.
시간있을때 해두고 바쁠땐 또 바쁜일을 하는게 맞는거 같습니다.
이전보다 그림에 더 집중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저는 그런 열정으로 그리는
저를 사랑했습니다.
비가 오는날 베란다에서
.jpg) |
| 집 베란다 |
.jpg) |
| 베란다 그리기 |
요즘 장마라 몇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비가 내리곤 합니다. 새 집으로 이사와서 저는 그동안 놓고 있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 합니다. 내 일을 찾겠다고 다른 몇가지 해보고 시도해 본 일도 있었지만 제가 다시 돌아온 일은 그림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길을 한번 가 봄으로서 제가 그동안 해왔던 일이 있다는데에 매우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다른 경험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또 적응을 하려니 어색함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설렘도 동시에 옵니다. 그동안 놓고 있는 손이지만 저는 꾸준히 해온 일이었기에 그림은 금방 적응을 합니다. 제가 사는 지역의 한 카페를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그릴때 마다 완성의 성취감을 느꼈던 건물그리기, 저는 지금도 계속 지웠다 그리기를 반복합니다.
저는 그림이 미완성일때, 그건 저의 삶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도 그려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서 정보를 얻는 일은 정말 중요한거 같습니다. 저도 처음부터 전문가이고 잘 했던건 아니었으니 공부를 해보면서 저는 제 자신이 단단해 짐을 느꼈습니다. 전보다 눈이 더 정확해 졌을지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공부나 그림 그리고 글 어떤 걸 배우든 자신이 계속 하는 일도 좋지만 사람의 손을 거쳐서 경험을 쌓는거도 중요함을 느낍니다. 비는 오지만 저는 제가 오늘 하는 일에 힐링이라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이전에 어떤 분이 해주었던 말이 생각납니다. '소현아, 너 하면 그림이 잖아'
미술관 작품 설명 만들어지는 법
보통 미술관에 가면 작품과 함께 작품 제목과 설명 캡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술 작품을 전시를 하는데 설명이 필요한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전에 클림트 레플리카 전시를 보러 가면서 알게 되었지만 클림트는 자신의 작품이 어떤 의미로 작품이 만들어졌는지 해석하는 걸 거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미술 작품을 설명은 의뢰를 받았기 작가 자신이 직접 설명을 붙인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설명이 어떤 걸 뜻하거나 의미를 부여했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은 다 지어낸 글이라고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글이 멋들어지게 표현하는건 작가의 기량이기도 합니다.
저도 제 졸업 작품을 설명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도 인터넷에 찾아가면서 고민을 해서 적었는데 '꿈과 이상'이라는 제목으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그때 제 작품 설명을 교수님들은 수긍은 하셨는데 저는 이걸 나무 위키에서 찾았다고는 말은 못했습니다.
어떤 때는 표현과 기법이라는 강좌 수업에서도 전시할 작품을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저의 시계 속에는 현재의 모습 과거의 모습만 있을뿐 그 시간은 더이상 제게 말을 해주지 않습니다' 사실 이 말도 바닐라 어쿠스틱이라는 인디노래의 노래가사말 이었습니다.
요즘은 작품 설명을 하려면 정보를 검색하고 작가의 생각을 좀 더 가미해서 의미를 연결 짓기도 합니다. 전시회에 가면 작가의 작품 설명들을 읽어가며 그림을 감상하기도 하지만 그 그림에 연구하는게 아니라면 진지하게 읽어가지 않아도 무방 합니다.
미술작품을 보았다면 내가 받은 느낌 직감과 상상을 믿어보셔도 좋습니다.
처음 화실의 인상
고등학교 졸업하기 직전 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화실을 처음 가보았습니다. 그 문을 여는 순간 물감냄새와 함께 풍겨져 나오는 색감있는 풍경이 눈에 선선하게 들어왔습니다. 내가 교실에서 봤던 책상, 의자, 칠판이 아닌 화판과 이젤이 있는 공간, 그건 마치 내가 공부를 마치면 돌아오고 싶었던 미술실 풍경이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저의 도구는 책과 사프펜슬이 아니라 붓과 판넬 캔버스를 이용한다는데에 낯설면서도 설렘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의 그림을 보았을때 실제로 사실 처럼 보이지만 사진은 아닌 그림 같은 그림,
그게 저의 마음을 사로 잡기도 했습니다. 그림을 하게 된다면 난 정말 늘 행복할거 같아,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함, 저는 그걸 믿어보기로 결심 했습니다. 그림도 노동이기에 공부와 같아서 꾸준함과 인내심을 요구했지만 그림을 배울수 있다면 그 과정마저 안고 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한 3년 한곳에서 하다가 또 한번 장소를 바꿔서 옮기고 이사를 해서 또 한번 이렇게 화실을 옮겨 다니곤 했습니다. 제가 두번째로 간 화실은 2층으로 올라가야 했는데 노후된 부분도 있었지만 그곳에서도 그림을 배우는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저는 나름 만족 했습니다. 그때는 수채화와 소묘 두가지를 같이 했었습니다.
사실 날씨가 더울때는 그 안이 정말 더운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선풍기 하나로 견뎌 냈습니다.
매일 저녁이 되면 계단 내려가는 곳이 캄캄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일정이 있으면 제가 그림을 마무리 할때까지 하고 갈 수 있도록 예비 열쇠도 만들어주었습니다.
저는 그 열쇠를 가지고 평일에도 가고 주말에도 사람이 없어도 간 적은 있습니다. 같이 공부하는 이모님은 저녁엔 어두우니 너무 늦게까지는 하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시기때 멘땅의 헤딩과 같이 그림으로 외길만 걸어온 생활을 해왔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열쇠는 화실을 한번 옮기고 난 뒤 그림을 쉬고 있을때 정리 했던거 같습니다. 지금도 이 열쇠를 보면 그림을 그리며 생활했던 모습을 떠올리고 합니다. 제 친구도 매일 입시때 뒷받침이 없고 발만 있는 둥근 의자에 오래 앉아서 허리가 아팠다고 하네요. 하지만 사람들과 모이면서 서로 담소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곤 했습니다. 다시는 이 열쇠로 화실 문을 열지 못합니다. 화실은 첫 인상은 지금은 인상과는 다르지만 제가 소중하게 여겼던 시간들이 있습니다. 항상 이 열쇠 속에 간직해 있기를